성균관 도서관에서 역사에 눈을 뜨다.
이처럼 일찍부터 역사에 눈을 뜬 그는 1898년 가장 권위 있는 고등교육 기관인 성균관에 입학하면서 역사에 대해 더 크게 눈을 뜨게 되었다. 시골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부한 자료들을 성균관의 도서관에서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균관 도서관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관한 책들을 모조리 읽어나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신채호는 우리 역사를 민중들에게 가르치고 깨우치는 것이 외세에 의해 병들어가는 나라를 일으키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성균관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가 문동학원을 세우고 애국 계몽운동을 펼쳐 나갔다.
장지연의 권유로 언론활동을 시작하다.
그러나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친일파 무리들이 갈수록 판을 치자 1905년 위암 장지연의 권유로 《황성신문》에서 언론활동을 펼치게 된다. 그러나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 문제가 되어 《황성신문》이 무기 정간되자, 이듬해 《대한매일신보》로 자리를 옮겨 언론 활동을 계속했다. 1908년에는 《대한매일신보》에 한국 고대사 연구의 방향과 관점을 새롭게 제시한 최초의 글인 「독사신론(讀史新論)」을 연재했다. 그는 「독사신론」에서 그동안 중국 위주로 쓰여 왔던 역사를 완전히 뒤엎고,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새로 정리했다. 이처럼 그는 민중들에게 역사를 통해 애국심을 북돋워줌으로써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1910년 한일합방이 이뤄지자, 안정복이 고조선부터 고려까지 다룬 역사책 『동사강목(東史綱目)』을 품에 안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 뒤 연해주로 거처를 옮긴 그는 《해조신문》, 《권업신문》 등에서 언론활동을 재개했다.
《권업신문》이 문을 닫게 되자 신채호는 1914년 만주 지방을 돌면서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 유물을 답사하며 민족사학의 실증적 토대를 마련했다. 1915년에는 베이징으로 옮겨 신한혁명당에 참가해 독립운동을 펼치며 본격적으로 『조선사』 저술에 착수하였다. 이 때 자료 부족을 겪던 그는 베이징대학 도서관을 이용하며 집필 자료를 얻었다.
역사연구야말로 중요한 독립운동
1919년에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을 했으나, 곧 실망을 하고 정치운동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이 굳건한 민족사를 쓰는 것이며, 역사 연구야말로 정치운동, 무장운동 못지않은 중요한 독립운동임을 확신했다. 이후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조선사』 집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 때도 베이징대학 도서관을 이용하였고, 리스청(李石曾) 교수의 협조로 베이징 대학도서관의 『사고전서(四庫全書)』1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역사와 관계된 수많은 중국서적을 섭렵할 수 있었다. 신채호의 국사연구에서 보이는 100여종이 넘는 수천 권의 참고문헌들은 대부분 베이징 대학도서관에서 읽었던 것이다. 이처럼 도서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국사연구에 몰입했던 신채호는 결국 우리나라의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2,『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 등을 저술해 냈다. 당시만 해도 조선의 고대사 연구가 빈약했고, 조선사 연구 자체가 일제에 의해 백안시당하고 있던 때였기에, 풍부한 자료와 새로운 이론으로 저술된 그의 글은 큰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나라가 있으면 반드시 역사가 있고, 정신이 생동하는 역사가 있으면 그 나라는 일어서게 된다는 것을 굳게 믿었던 사학의 선구자였던 단재 신채호는 1928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려다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고, 뤼순감옥에서 8년의 옥고를 치루다 돌연 뇌일혈로 의식을 읽고 결국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타국 땅에서 옥사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 『단재 신채호 일대기』, 임중빈, 범우사, 2003.
• 『단재 신채호 평전』, 김삼웅, 시대의창, 2005.
• 『신채호』, 강만길 엮음,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0.
• 『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 인물 열전 3』, 정옥자 외, 돌베개,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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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는 어떤 분이었나요? 삭제
2008/08/22 04:45TRACKBACK FROM Daum 신지식애국 계몽 운동의 이론가로 이름을 떨치고 독립 운동에도 이바지를 한 단재 신채호 선생님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6학년 1학기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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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에 관련한 내용 알려주세요. 삭제
2008/08/22 04:45TRACKBACK FROM Daum 신지식단재 신채호의 생애에 관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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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선생님이 아직 우리나라 국적을 얻지 못하고 무국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어떻게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싸우신 분을 무국적자로 놔둘수 있는 건지...하루빨리 신채호 선생님에게 국적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네요.
2008/08/17 15:36 [ ADDR : EDIT/ DEL : REPLY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신채호 선생님은 일제에 저항해서 호적을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방 후 일제때의 호적을 그대로 이어받은 이 나라 정부는 호적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고 신채호 선생님을 무국적자로 만들어 버렸지요. 이게 다 아직도 친일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2008/08/17 18:39 [ ADDR : EDIT/ DEL ]신채호 선생님을 여기서 뵙게 되는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08/08/18 14:26 [ ADDR : EDIT/ DEL : REPLY ]제프님 반갑습니다. 트랙백 타고 오셨군요~
2008/08/18 14:43 [ ADDR : EDIT/ DEL ]앞으로도 종종 놀러 오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최근에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분들이 바로 일제시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신 분들입니다. 독립은 했지만 일제에 빌붙었던 친일세력들은 오히려 더 큰 권력을 손에 쥐고,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해오신 분들은 오히려 쫓겨나거나 목숨을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우리는 잘못된 역사 교육을 받고 자라나 이런 분들이 계신지도 모른채 살아왔으니, 지금 이명박 세력이 '건국절'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게 된다면 먼 후대에 우리 손자 손녀들이 배울 역사는 어떤 요상망측한 것이 될지 상상도 하기 싫어집니다!
2008/08/18 15:32 [ ADDR : EDIT/ DEL : REPLY ]오죽하면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을까요. 친일세력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이 나라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이예요.
2008/08/18 17:06 [ ADDR : EDIT/ DEL ]그렇지만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죠. '친일하면 3대가 망하고, 독립운동 하면 3대가 흥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에 알리고 깨달으면서 하나씩 바꿔나가야겠죠. '삶창'에서 우리시대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펴내듯이요 ^^
이 나라는 아직도 바로서지 못한듯합니다....
2008/08/20 16:50 [ ADDR : EDIT/ DEL : REPLY ]건국절이라는 헛소리까지 나오는 현실 앞에서 선열들에게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친일파들이 아직도 판을 치는 세상.
우리나라 바로서지 못한데는 친일파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같아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응당한 댓가를 치루게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어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되려 떵떵 소리치게 되었으니...그 이후에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2008/08/20 19:02 [ ADDR : EDIT/ DEL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이 잘못된 것들이 바로 잡힐런지..걱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