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23. 16:39

'도서관 사서' 사용설명서 



1.
고등학교 시절, 존경해마지 않던 선생님께 꽤나 충격적인 발언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흔히, 선생은 제자들을 편애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선생도 편애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언제나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제자들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적지 않은 놀라움이었다. 물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선생님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당시, 선생님께서는 그 말씀에 이어 당신은 외모나 성적 등으로 편애를 하지는 않는다, 열심히 하는 모습과 성실한 태도 등의 한결같은 모습, 그런 학생들을 보면 어떻게 편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하셨다.

선생님의 그 발언이 있은 후, 같은 반의 거의 모든 학생들은 선생님의 편애(?)를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어느덧 우리 학급은 모범 학급 수준이 되어 있었다. 물론, 선생님은 편애 따위는 하지 않으셨다. 모든 학생들을 사랑하셨다, 처음부터.


2.
치사스러운 이야기 하나를 고백하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인고 허니, "나는 예의를 갖춘 도서관 회원들을 편애한다."는 사실이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고운 법이니, 예의를 갖춘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위한 변명 아닌 변명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복선도 없으며, 솔직한 개인의 양심 고백이다. ㅡ0ㅡ;;


3.
예전에 어느 전문도서관에서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나는 굉장히 어린 사서 였다. 거의 햇병아리 수준이었는데, 대부분의 박사님들은 아이 다루듯 나를 대했다. 호칭은 대개 "아무개야", "아무개 씨"였고, 더러는 "어이~!" 하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렇게 불리는 것에 어느덧 꽤나 익숙해져 버린 상태였다.

한 번은 특이하게도(?) "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박사님을 만나게 된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 분이 나에게 뭔가 아쉬운(??) 일이 있어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하간, 까닭이야 어찌 되었건... 내가 그 분에게 굉장한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은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박사님은 나에게 당신이 진행하고 있던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했는데, 나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필요한 자료를 찾아 날랐다,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박사님의 연구결과가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머리말에는 이런 문구가 눈에 띄었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도움을 준... 아무개, 아무개... 그리고, 이 책을 쓰는데 거의 절대적으로 도움을 받은 도서관의 사서들에게 감사한다."


아, 내가 어떻게 이런 분에게 헌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간이 흐르고, 그곳을 떠난 지금까지도..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때의 그 문구를 되뇌이며 견뎌내고는 한다.
"절대적인 도움에 감사"
"절대적인 도움에 감사"
"절대적인 도움에 감사"...


4.
보고서를 잘 쓰고 싶다면, 논문을 잘 쓰고 싶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논문 잘 쓰는 방법(열린책들, 2001)》이라는 책을 통해 "도서관 사서를 잘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이 책 보기, 인터넷 서점에서 보기



엥? 도서관 사서를 잘 활용하라구?
에코는 자료를 조사할 때, 도서관에서 도서목록이나 참고문헌 목록들을 검색하거나 도서관 상호대차를 활용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면서 더불어 '도서관 사서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다.

 소심함을 극복해야 한다. 종종 사서는 여러분에게 확실한 충고를 해줌으로써 시간을 절약하도록 해준다.

 (일이 많아 바쁘거나 신경질적인 책임자의 경우를 제외하고) 도서관의 책임자는, 특히 작은 도서관일수록, 다음의 두 가지, 즉 자신의 박식함과 기억력, 그리고 자기 도서관의 풍부함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아주 행복해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도서관이 변두리에 있고 또 찾는 사람이 없을수록, 책임자는 그 도서관이 인정받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감에 괴로워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그런 책임자를 즐겁게 해준다.
 

                           -  [논문 잘 쓰는 방법(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1)] 中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도서관 사서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소 과장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굉장히 진실에 근접해 있다고 이야기 할 수는 있을 듯하다.

도서관 사서도 사람이다 보니, 자신을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보다 적극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도서관 사서에게 굽신거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어른다고 해야 할까, 구슬린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그 편에 가깝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5.
밖에서는 평온해 보이겠지만, 생각보다 도서관 사서는 험한(?) 꼴을 꽤나 많이 당하는 직업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는 자주! 하대를 당하거나, 험한 말을 듣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특히, 신출내기 사서나 여성 사서들에게 더욱 잦은 것으로 보이는데... 믿지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멱살까지 잡혀 본 일이 있다. (-_-;;)

같은 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는 다아림 님의 표현처럼...
도서관 사서는 "사람을 물거나 해치지 않습니다.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 당신은 더욱 존중받을 것이고,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을테니 말이다. (^^;;)



by 발광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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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