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이 저물어 갑니다. 뭐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새삼스러울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왠지 딱 떨어지는 해는 뭔가 의미를 더 부여하고픈 마음이 드네요.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하는 것처럼. 그래서 방치상태로 두고 있던 블로그에 불현듯 글 하나를 쓰게 되었습니다.
도서관 중독자가 한 해를 마감하며 쓰는 글이라야 뻔합니다. 올해의 책을 꼽씹어 보는 것!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들이 대박을 터뜨리며, 각 서점이나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히고 있지만, 도서관 중독자는 이번에도 그딴 건 신경쓰지 않고 올해의 책을 뽑았습니다. 총 10권이며, 순서는 제가 올해의 책으로 기억해 낸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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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책입니다. 2009년, 10개월 동안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강유원 선생님의 강의로 진행했던 '인문 고전 강의'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대는 '글을 읽는 힘', '생각하는 힘' 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온통 화려한 미사여구로 분칠할 줄만 알 뿐입니다. 이 책은 그런 추세에 반해, 모범을 보주는 책입니다. 책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쉬운 것은 아닙니다. 글 한 자 한 자 촘촘히 읽고 머리에 땀흘리며 공부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20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하나로 꿰는 고전의 지혜들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오래된 지식, 새로운 지혜'를 만날 준비를 쌓아보십시오. 그 다음 우리가 매번 '읽어야 겠다고 생각만 했던 인문 고전'들을 직접 읽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그런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제자리를 벗어난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낭비와 욕망’에 물든 우리 자신임을 알게 해주는 책입니다. 산업사회와 소비문화를 '쓰레기'를 통해 역사적으로 살펴 봄으로써 우리가 함께 잃어버리고 있는 성찰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지요. 단지 쓰레기로 인한 환경파괴와 소비문화 이야기만을 들려주는 책은 아닙니다.
부끄럽지만 경향신문의 '책읽는 경향'에 이 책의 서평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 이 책과 함께 리차드 세넷의 <장인>을 읽으면 좋을 것 같네요. <장인>은 아직 읽지 못해서 올해의 책에서는 제외되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애써도 사과 꽃 한 송이 피울 수 없어요. 나락을 맺게 하는 것은 벼이고, 사과가 열리게 하는 것은 사과나무입니다." 기적의 사과로 유명해진 일본의 농부이자 이 책의 저자인 기무라 아키노리의 깊은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10년동안 사과의 힘을 믿고 기다려온 저자의 뚝심은 미련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그가 기다리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결과는 약을 전혀 치지 않고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 였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우주의 질서를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교만한 의지로 뭉친 것이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는 훌륭한 책입니다.
도서관 사서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분류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도서관 사서나 전문가만이 분류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자주 나름대로의 분류를 하기 마련입니다. 이 책의 표지에 써 있는 '분류는 본능이다, 권력이다, 역사다.'란 말은 이를 잘 표현해 줍니다. 그렇게 항상 인류의 곁에 있었던 분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의 지성사도 함께 보게 됩니다. '분류'란 행위에는 인류가 생각한 온갖 개념과 권력, 생각 들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분류의 역사를 꿰뚫는 책이 거의 없었서 아쉬웠는데, 참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일리치 빠로서 너무나 반가웠던 책입니다. '이반 일리히'라는 잘못된 호칭을 바로 잡은 것만으로도 반가웠지만, 일리치 사상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데서 의미있는 책입니다. 일리치를 학교, 병원, 개발 등 근대사회를 비판한 사람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리치는 비판의 핵심은 그 체제가 앗아가는 '인간다움'과 그것의 회복에 있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 책입니다. 읽기 어려운 다른 일리치 책들에 비해, 이 책은 데이비드 케일리와의 대담 형식으로 이뤄져 있어 이해가 쉬운 것도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관련글 - 이반 일리치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2008/10/29 - 도서관을 인류를 구할 도구로 생각하다, 이반 일리치
2010/01/06 - 도서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책 이야기 - 이반 일리치의 책들
2010년 올해의 책을 꼽아보기 위해 이 책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도 더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내몰린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보장 받으며 살 수는 없는걸까요? 이 만화가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실제 현실은 더 참담할 것입니다. 대학시절 잠깐 옆에서나마 지켜봤던 철거민들의 삶과 투쟁이 떠올랐습니다. 절망의 끝에 내몰리고서도, 항상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셨던 그 분들. 개발과 성장이라는 괴물의 흉악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용산'은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선생님의 삶을 그린 만화책입니다. 이 책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타깝게도 허영철 선생님이 별세하셨지요.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책들이 여럿 있지만, 이렇게 책 제목에 버젓이 '나는 공산주의자다'라고 내세운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공산주의'는 금기 중의 금기이기 때문입니다. 보리 출판사 윤구병 대표의 대범함과 뚝심이 돋보입니다. 게다가 만화 <꽃> 때부터 좋아하던 박건웅 작가의 만화이니, 올해의 책으로 뽑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돌아가신 송건호 선생님과 함께 제가 제일 존경하던 분이셨습니다. 송건호 선생님처럼 리영희 선생님도 '선비'셨습니다. 누구보다 학식과 명망이 높았지만 수많은 유혹에도 벼슬을 하지 않았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으셨죠. 리영희 선생님은 무슨 운동가도 정치가도 아니셨습니다. 그냥 마땅한 것, 진실인 것을 묵묵히 쫓아가셨던 분입니다. '사상의 은사'는 사람들이 붙여주었지만, 본인은 그런 호칭은 전혀 신경쓰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제 이런 고결한 '선비'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선비의 길을 뛰쫓는 김삼웅 선생님이 쓴 이 책을 통해서나마 그 참된 선비정신을 되새기고 배울 수 있을 뿐입니다.
참 민망하지만, 이 두 책을 올해의 책으로 뽑을 수 밖에 없네요. 모두 제가 일하고 있는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나온 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쉿! 도서관의 비밀을 지켜 줘>는 이 블로그에도 연재했던 '도서관 인물열전'의 어린이 판입니다. 참고로 제 아내가 어린이들이 재미있기 읽을 수 있도록 썼답니다. ^^; 이 책의 목적은 도서관이 단지 책과 공부만 있는 곳이 아니라, 삶의 다양함이 스며든 곳이란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였답니다.
다음으로 <앗! 도서관의 책들이 사라졌다>는 블로그 공동운영자이기 하신 발광문정, 바로 우리 도서관 운영과장님께서 쓴 동화책입니다. 세상 모든 책을 없애려는 '북북단'에 맞서 책과 도서관을 지키려는 도영이의 모험을 다룬 동화지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좋은 책들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책이랍니다.
이상 도서관 중독자, 리브홀릭이 뽑은 2010년 최고의 책이었습니다.
뭐 제 멋대로 뽑은 책들이라서 공감하실런지는 모르겠지만요. ㅡ,ㅡa
by 리브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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